1. 들어가며
‘걸어서 거제 한 바퀴’는 2009년 3월 29일 학동바닷가에서 첫 걸음을 시작했다. 거제를 알고, 느끼고, 사랑하기 위해서 모인 다섯 명의 발걸음이 ‘걸어서 거제 한 바퀴’의 시작이다. 11번의 답사를 거쳐, 그해 6월 21일 흥남해수욕장부터 옥포대첩에 이르는 길을 시작으로 매주 한 차례 모여, 거제의 길을 걷는 것으로 진행했다. 54번의 모임을 더 가진 2010년 7월 3일 거제의 옛 중심지였던 거제면에서 계룡산을 넘어 거제시청에 이르는 길을 걸은 후 대장정의 순례를 마쳤다. 모두 65번의 만남이었다. 그 만남을 통해 사람들은 거제의 해안길 7백리, 내륙길 3백리, 11개의 산과 6개의 부속섬을 걸었다.
 
순례는 처음부터 세밀한 계획을 수립해서 진행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모여 다음의 여정을 확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이렇게 계획을 세우지 않고 진행한 것이 참가 대중에게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길에서 함께 모여, 다음에 갈 길을 의논하고, 고민하고, 둘러보고, 답사했다.
걷기 순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았다. 공무원, 주부, 학생은 물론 은행원,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참가가 늘었다.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다. 거제지역 언론의 보도와 시사저널, 경향신문, 불교신문에서 소개했으며, MBC가 방영했다. 그러나 더욱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참가자들의 반응이었다. 자연에서, 자연을 걸으며 행복을 느꼈으며, 감사와 배려를 배웠다.
 
2. 왜 걷기 시작했나?
“거제를 배우고 싶었습니다. 거제가 우리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거제의 역사, 거제의 자연, 거제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거제의 미래에 대해서도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계절의 변화도 느껴보고, 그 속에 묻혀있는 역사의 소리, 사람의 향기에도 귀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거제가 걸어 온 길과 그 길에서 피어난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사람들의 고마움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곳에 거제의 미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걸어서 거제 한 바퀴입니다”
 
걷기를 시작하면서 밝힌 취지문이다. 취지문에서 밝힌 것처럼 걷기는 거제의 역사, 거제의 생명, 거제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거제의 삶과 미래를 볼 것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거제 사람의 마음을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걷기에 앞서 참가자들은 회의를 통해 “왜 걷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했다. ▲ 지역사랑 ▲ 쉼과 성찰 ▲ 치유와 보살핌 ▲ 소통과 화해를 목적으로 했다. 첫째, 삶의 터전인 거제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거제 사랑의 마음을 넓힐 것. 둘째, 자연을 벗하며 산과 마을을 걸으며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유와 쉼을 익힐 것. 경쟁적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을 익힐 것. 넷째, 자신과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같음과 다름을 인정하고 공감하면서 함께 걷는 동행의 의미를 걷기를 통해 배울 것을 기대했다.
 
3. 어디를, 어떻게 걸었나?
거제의 해안길, 내륙길, 산길을 모두 걷기로 했다. 그리고 가조도, 칠천도, 산달도, 화도, 이수도, 지심도 등 거제의 부속섬도 걷기로 했다. 거제의 해안길은 7백리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길이다. 섬의 크기는 제주도가 가장 크지만, 거제의 해안은 제주의 해안과 달리 포(浦)가 많아 그 길이가 더 길다. 그 길을 모두 걷기로 했다. 시계 바늘 방향으로 걷기로 했으며, 첫 시작점을 흥남해수욕장으로 잡았다. 내륙길도 걷기로 했다. 대략 3백리 정도다. 산은 해발 400m을 기준으로 잡았다. 산은 겨울에 오르기로 했다. 거제의 10대 명산을 모두 오르기로 했으며, 왕조산을 더했다.
 
예비 모임을 11차례 가졌으며, 54번의 걷기를 했다. 이 기간 동안 걷기는 매주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진행했다. 걷기를 마친 후에는 회의를 통해 ‘다시 걷고 싶은 거제 명품길 10곳’을 선정해 걸었다. 제1차 걷기는 모두 74번을 걸었다. 500일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참가자들의 나이는 두 살 아이부터 여든의 할머니까지 다양했다. 건강한 사람도 있었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다. 신체의 건강을 돌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 걷기가 아니기 때문에, 빠른 걸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한 번 걸을 때 대략 삼십리(12km)를 걸었으며, 시간은 4-5시간을 배정했다. 누구나 쉽고 천천히 걸을 수 있도록 했다.
 
보름을 전후로 해서는 야간 걷기를 했다. 달빛을 벗 삼아 걸었다. 달이 앞을 인도했으며 달그림자가 벗이 되었다. 걷는 도중에 묵언(黙言)의 시간도 가졌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잘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회원들의 감동은 컸다.
 
거제의 산과 마을을 걸을 때는 반정규 회원(거제 축협)과 박석범 회원(거제시청)이 더욱 유익한 시간이었다. 두 회원의 지혜가 회원들의 앞길을 열어 주었다.
 
4. 무엇을 배웠으며, 느꼈나?
4-1 연기적 존재로서의 ‘나’
우리는 걸으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조금씩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홀로 내가 아니고 관계로서 ‘나’임을 알게됐다. 우리는 매번 걷기를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에 서로에게 큰 절을 세 번씩 했다. 반가움과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홀로가 아닌 함께이기에 이 걸음이 즐겁고 행복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 시작과 끝에 서로에게 그 반가움과 감사함의 표시로 큰 절을 했다. 건강한 몸을 갖게 한 모든 인연에게 감사함을 표현했고, 함께 걸었던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도 표현했다. 또 길에서 만난 모든 생명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절을 했다.
 
4-2 배려와 존중.
연기적 존재로서의 ‘나’를 알게 된 우리는 걷기를 통해 남에 대한 배려심의 중요함도 배웠다. 세상은 나 혼자 존재할 수 없음을 알았으며, 함께 존재하는 이웃에게, 생명에게 무한한 경이로움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게 됐다. 우리의 배려는 작은 것부터 실천했다. 도로의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걸을 때 차가 보이면 손을 흔들어 우리를 알렸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운전자를 놀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배려다.
 
4-3 느리고 낮음으로써 배운 것.
걸으면 더 자세히,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세히는 볼 수 없다. 빨리 지나쳐 버린 길에서 찾을 수 없는 존재들을 우리는 걸으면서 보고 배웠다. 자연이 준 가르침이다. 거제의 자연이 준 감동의 선물이었다.
 
길위에서 거제와의 만남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었다. 푸른 하늘과 비취빛 바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과 그 너머에 일렁이는 은빛 물결, 코끝을 자극하지 않으며 편안함을 주는 향기, 자연의 소리는 우리 지역 거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길은 그 자체로서 소통이며, 만남이다. 길에서의 만남은 자연과의 소통, 사람과의 소통의 기회를 주었다. 푸른 바닷물과의 만남, 그 가운데에서도 스스로와의 만남은 길을 걸으면서 느끼게 된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5. 아쉬움은 없었나?
5-1. 길이 없다?
위험했다. 걷기는 시계 방향으로 도로의 갓길을 이용해 걸었다. 차를 등지고 걷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갓길이 좁아 마주 오는 차가 큰 위협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다. 차 소리가 들릴때는 모두가 긴장을 해야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걷기가 쉽지 않았다. 차들의 속도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빠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도로 갓길은 대부분 좁아 피할 수가 없었다. 걸을 만한 길이 턱없이 부족했다. 도로 갓길을 걷는 거제의 걷기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해안길과 내륙길의 절반 이상은 도로를 걸어야만 했다. 도로의 갓길을 걷는 것은 위험 자체였다.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길이 적었음을 느꼈으며, 새로운 과제가 생겼다.
 
5-2. 버려진 역사의 흔적들...
거제는 선사시대는 물론 고려, 조선, 근현대사에서 민족의 획을 긋는 사건이 많이 발생한 곳이다. ‘섬’이라는 특성뿐만 아니라, 일본과 접경에 있고, 물이 풍부하며,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충분한 토양이 있기 때문에 역사의 중요한 사건마다 거제가 있었다. 특히 전란의 현장이며, 교류의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이정표를 세운 곳이 거제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에 앞서 고려시대에는 국란을 극복하기 위해 조성한 팔만대장경판의 나무의 원산지가 거제였다. 거제의 나무로 팔만대장경의 경판을 조성했다., 한국전쟁시에는 포로수용소와 피난민의 거처로 거제가 역할을 했다. 거제가 없었으면 전쟁은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거제시민의 인내와 그 역할을 했다.
 
따라서 거제에는 수많은 성과 봉수대 등 역사 유적이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는 그곳을 쉽게 보거나 쉽게 접할 수 없다. 보존 상태 역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방안 수립이 시급했다. 걷는 곳곳에서 거제의 역사를 만났다. 만난 역사의 흔적들이 온전히 보존된 곳도 있었지만, 겨우 그 자취만 간직한 곳도 많았다. 오히려 보존을 한다고 공사를 한 것이 그대로 놓아 둔 것보다 더 보존을 어렵게 한 곳도 있었다.
 
5-3. 쓰레기
거제의 해안이 절경을 이루어 아름답고, 해안 너머에 위치한 섬과 바다 빛깔이 곱다고 하지만, 해안가에 넘치는 쓰레기는 그 아름다움과 고운 자태를 무색하게 만든다. 거제는 북으로 진해만과 맞닿아 있으며, 서로는 마산과 고성, 통영이 바다 건너에 위치해있다. 동으로는 부산과 인접해 있다. 낙동강을 따라 흘러들어 온 쓰레기부터 거제에서 발생한 쓰레기까지 해안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음을 목격했다. 해안은 물론이고 길 곳곳에도 쓰레기로 가득하다. 심지어 냉장고, 책상 등 전자제품과 가구들도 마구 버려져 있는 곳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쓰레기들이 제법 많은 시간이 경과한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시민정신도 필요하지만, 버려진 쓰레기를 빠른 시간 안에 잘 수거하는 것 행정의 조치도 절실했다.
 
5-4. 길을 만든다?
‘걸어서 거제 한 바퀴’ 모임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처럼 거제의 길은 언제 만들 것?”이라는 질문과 “올레길, 둘레길처럼 거제의 길의 이름은 무엇이냐?”였다.
 
외부의 이러한 물음과 무관하게 참가자들의 머릿속에서도 “길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생기게됐다. 몇 차례 공식 회의와 비공식 논의가 진행됐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진행됐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이견은 좁아졌다. 우리는 가급적 섣부른 판단으로 길을 만듦으로써 발생하는 환경 파괴와 예산 낭비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바람이 다소 더디게 현실화되더라도 혹은 거제에는 다른 지자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드는 특별한 길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섣부른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에서 실상사의 불사십조(佛事十條)를 모범으로 삼기로 했다. 실상사 불사십조는 실상사의 대중들이 절 불사의 원칙을 세워 모범으로 삼기위해 전문가와 지역주민들의 참여속에서 만들어졌다. 주요내용은 연기적 세계관으로 생명살림과 공동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대중적 협동과 전통의 계승, 시대와 사회요구에 부응하는 생태적 건축불사가 중심이다. 실상사 불사십조를 거제의 길 만들기에도 적용할 것을 제안하고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거제 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대중적 참여 과정을 거치면서 거제의 길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거제 길의 명칭에 대해서는 ‘거제 섬 길’로 정하기로 잠정적으로 정했다. ‘거제 섬 길’은 바닷길과 들길, 산길 등 셋으로 구분하기로 했다. 길의 명칭을 보통명사인 섬, 바다, 산, 들을 사용해서 짓는 문제가 제기됐지만, 거제의 역사성을 감안 ‘거제 섬 길’로 했다.
 
6. 다시, 행복 여행을 떠나며...
걸어서 거제 한 바퀴를 마친 것은 거제 시청 뒤뜰이었다. 거제면에서 시작해 계룡산을 올라 시청에 이르는 길을 순례의 마지막 코스로 잡았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다. 이로써 65번의 거제 섬길 순례를 마무리했다. 힘들고 긴 여정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회원 대부분은 “잠시 걸음을 쉬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도법스님은 “말로는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왜 그 기쁨과 행복을 멈추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스님의 지적이 많지만 매주 한 차례 모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여정이었다.
 
잠시 쉬기로 했다. 한달을 쉬고 8월 15일부터 10월 17일까지 10주간 ‘다시 걷고 싶은 거제 섬 길 10곳’을 순례하고 난 후 공식적으로 제1차 ‘걸어서 거제 한 바퀴’를 회향했다.
 
지난 5개월 동안 우리는 제2차 걷기 순례를 준비했다. 제1차 걷기의 부족한 점을 메우는데 시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마치면서 했던 이야기는 ‘행복’이었다. 자유와 편안함으로 행복을 얻고 간다고 했다. 우리의 걷기는 분명 행복 여정이었다. 그 행복 여행을 이제 다시 떠난다

[출처] - http://www.sunwoogf.com/g4/bbs/board.php?bo_table=comm_story&wr_id=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