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사시대:지역생활의 시작과 독립세력의 형성기

거제도는 면적 399.89㎢로서 제주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2번째 큰 섬이며, 거제시

는 본도(本島)와 주변 62개의 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유인도가 11개이고 무

인도가 51개이다. 지리적으로는 내륙지역인 통영(統營), 고성(固城), 진해(鎭海)

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면하고 있으며,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대마도(對馬島)도 한눈

에 들어오는 위치에 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은 선사시대 이래로 거제도가 내륙의 한

반도 문화를 대마도(對馬島) 및 일본(日本)으로 전달하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고, 대일

(對日) 및 대대마도(對對馬島) 교섭의 중요 거점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조건이 되

었던 것이다.

거제시는 사면이 바다로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해역에 위치하여 연중 수산자원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다. 특히 동쪽에 위치한 장승포(長承浦)의 양지바위 끝은 720여

종의 수산자원이 서식하고 있다. 아울러 섬지방임에도 불구하고 기후가 온화하고 강수

량이 풍부한 아열대지대에 속하고 토지가 비옥하며 물이 풍부하여 농업생산 기반도 유

리한 위치에 있다. 동부면, 둔덕면, 연초면, 신현읍 등지에는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벼

농사가 가능하며, 산세의 경사가 있는 지역에서는 밭 농사도 짓고 있다. 유자를 비롯한

과수작물의 재배, 목축도 가능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생산조건은 선사시대부터

거제지역에 사람들이 이주하여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거제도에 있어서 인류가 처음 생활하기 시작한 시기는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 전기

단계(前期段階)로 추정된다. 거제시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산달도(山達島) 후등패총(後

登貝塚)에서는 신석기시대 전기, 중기, 후기단계에 걸치는 특징을 가진 유적이 발견되

었으며, 특히 우리나라 신석기문화의 가장 이른 단계로 편년(編年)되고 있는 융기문토

기(隆起文土器)와 마지막 단계의 유물인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도 출토되었다. 이

처럼 산달도패총은 신석기시대 전기간(全期間)에 걸쳐 형성된 문화양상을 나타내 보이

고 있다.

또한 신석기 후기단계의 유적으로는 공고지유적(遺蹟), 내도패총(內島貝塚), 이수도

패총(利水島貝塚) 등이 있으며, 공고지유적과 내도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흑요석(黑曜

石)이 많이 출토되었고, 내도패총에서는 신석기 토기편(土器片)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 거제지역의 신석기 유적가운데 공고지유적은 거제 본 섬에 위치하고 있

으나 그 나머지는 부속 도서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예상되었던 대부분의 지역이 주택이나 항만시설 등의

설치로 원형이 파괴 또는 변형되었기 때문에 찾을 수 없게 된데 불과하다.

산달도패총은 신석기문화 전반에 걸친 유물이 출토되어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 연구에

중요 유적으로 주목되어 왔으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도록 되어 버린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특히 산달도유적과 같이 신석기시대 전기간에 걸쳐 유물

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거제도 남서쪽에 위치한 통영 욕지도(欲知島)와 그 주변 도서

지역, 그리고 부산, 김해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거제지역

에는 신석기 이른 단계로부터 후기단계에 이르기까지 전기간에 걸쳐서 사람들이 이주하

여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청동기시대

거제지역에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에도 지석묘(支石墓)를 중심으로 많은 유적들이

구릉(丘陵)이나 주변 평야지역에 나타나고 있어 신석기시대에 이어 계속적으로 인류 활

동이 전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모두 20여 개소에서 확인되었

으며, 주로 지석묘(支石墓)가 중심이고 각 지역에 고르게 분포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무문토기류(無文土器類)가 비교적 많이 출토되고 있는 지역은 하청리(河淸里)와 이목리

(梨木里)의 이목댐 주변이며, 지석묘와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석관묘군

(石棺墓群)도 이 이목댐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공고지유적과 내도유적에서도 무문토기류와 유구석부(有溝石斧), 석착(石鑿),

마제석부(磨製石斧), 타제석부(打製石斧) 등의 석기류(石器類)를 중심으로 하는 생활유

적이 해안에 형성되었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청동기시대 지석묘가 발견된다

는 사실은 곧 이 시기 거제지역에서 독립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활동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제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 전기 단계부터 사람들이 이주

하여 생활하기 시작하였으며,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독립적인 지배세력이 등장하고 있

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선사시대 사람들은 농업생산과 함께 바다에 둘러 싸인 도서지

방이라는 유리한 입지조건을 충분히 이용하여 일찍부터 해산물의 생산과 해상교류에 나

서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의 활동과정에서는 한반도 문화의 일본전파도 담당하기

도 하였으며, 나아가 지역 내부에서의 독자적인 해상세력의 출현도 촉진시켰을 것이다.

3. 삼한∼삼국시대:독립세력 발전기

삼한시대 변한(弁韓)에 속하였던 거제지역에서는 보다 강력한 독립적인 정치세력이

출현하여 소국(小國)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산패총(南山貝塚)에서 발

견된 삼한시대의 유적, 일운면(一運面) 내도패총, 그리고 하청면을 비롯한 거제면 및 아

주동 등지에 분포한 고분유적은 삼한시대 변한 12국 가운데 하나의 소국인 두로국(瀆盧

國)의 존재를 짐작하게 한다. 그 가운데 남산패총은 독립구릉(獨立丘陵)의 남쪽 경사면

에 패총이 형성되어 있으며, 김해패총(金海貝塚)과 고성(固城) 동외동패총(東外洞貝塚)

을 비롯한 이 시기 남해 연안지역의 유적들과 그 특징이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성격의 유적은 삼한시대 변진(弁辰) 24국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거제도

에도 두로국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며, 아울러 이 시기 거제지역

이 이들 지역과 빈번하게 교류하거나 접촉을 하였음을 입증하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

유적은 대부분 파괴되어 버렸으나 유물의 출토범위가 넓어 삼한시대에는 이 지역이 거

제도 내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d삼국지(三國志)e위서(魏書), 동이족(東夷族), 변진전(弁辰傳)에는 변진(弁辰) 24개

의 나라이름을 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22번째에는 변진 두로국(弁辰瀆盧國)이 기록

되어 있다.d 삼국지e에 기록된 24국 가운데 변진(弁辰)이 서술되어 있는 열 두 나라는

변한(弁韓)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으로 두로국 역시 변한에 속한 소국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두로국이 위치한 지역은 기존 연구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 보고된 연구 성과에서는 두로국의 거제지역 위치설을 새롭게 제시함으로써 주

목을 받고 있다. 1997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간행한d거제거림리유적(巨濟巨林里遺

蹟)e(고적조사보고서, 제25책)에서는 거림리(巨林里) 유적에서‘상사리(裳四里)’라고

표기된 기와의 명문(銘文)을 발견·소개하여, 삼국 및 고려시대 거제군현의 치소(治所)

와 함께 삼한시대 두로국의 위치비정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이 보고서

의 연구 책임자인 심봉근(沈奉謹) 교수는 본 명문기와에 표기된‘상(裳)’의 어원(語原)

을 자신이 이전부터 밝혀온‘두로(瀆盧)’의 한역(漢譯)으로 적극 해석함으로써 거제 위

 치 비정설을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이 견해를 뒷받침할 고고학적인 자료의

발굴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두로국의 거제 비정설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하여d한국 남해연안지역(韓國南海沿岸地域) 성지(城址)의 고고학적 연구

(考古學的硏究)e(심봉근(沈奉謹), 학연문화사(學硏文化社, 1995)에 제시된 논거를 정

리·소개한다.

4. 두로국(瀆盧國)

d삼국지(三國志)e위서, 동이전, 변진에는 변진두로국(弁辰瀆盧國)의 나라이름과 함

께 그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기사내용을 기록해 두고 있다. 그 위치와 관련한 기사는

“그 두로국(瀆盧國)은 왜(倭)와 경계(境界)에 있다.”라는 유일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기록에는 그 지역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까지 위치비정은

거제설(巨濟說)과 동래설(東萊說)로 주장이 나누어져 있는 실정이다.

두로국의 거제 위치비정은 조선 후기부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d아방강역고

(我邦疆域考)e(d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e, 경인문화사, 1969)에서 거제가 왜국(倭國)과

경계라는 점 등과 함께“포안(鋪安) 두로국(瀆盧國)이라는 것은 지금의 거제부(巨濟府)

이다. 본래 상군(裳郡)은 방언 상(裳)이 두루기(斗婁技)라 일컬어 두로(瀆盧)라는 소리

와 가깝다.”라는 내용을 제기하면서 주목되었다. 즉, 신라 문무왕 때 처음 설치한 상군

(裳郡)의‘상(裳)’소리는 두루기와 같고,‘ 두로(瀆盧)’는‘도로’또는‘두루’로 읽어 그

소리가 두루기와 가깝다고 하였다. 또한 장지연(張志淵)도d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e를

증보하여d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e를 편집하면서 거제의 두로국 위치 비정설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일본의 역사학자인 말송보화(末松保和)도 d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e(吉川弘文館,

1949)에서 정다산이 주장하고 점패방지진(鮎貝房之進)이d속자고(俗字攷), 속문고(俗文

攷), 차자고(借字攷)e(太學社, 1952)에서 동조한 거제 비정설에 가담하였으며, 국문학

자인 양주동(梁柱東)은d고가연구(古歌硏究)e(증정본, 일조각, 1965)에서 두로(瀆盧)를

‘두루’,‘ 도로’로 읽어 거제임을 밝혔다. 또 일본의 진전좌우길(津田左右吉) 박사가 저

술한d만선역사 지리 연구(滿鮮歷史地理硏究)e(岩波書店, 昭和39년, 1964)에서도 거제

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동래 비정설은 길전동오(吉田東伍)의d일한고사단(日韓古史斷)e(富山房,

1977), 가야조(加耶條)에서 두로국을 당시 동래군(東萊郡) 다대포(多大浦, 지금의 부산

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비정하였고, 이병도(李丙燾)박사는「삼한문제(三韓問題)의 신

고찰(新考察)」{d진단학보(震檀學報)e;d한국학문헌연구(韓國學文獻硏究)의 현황(現況)과

전망(展望)e, 아세아문화사, 1983 } 및d한국사(韓國史)e(을유문화사, 1959), 고대편(古

代編)에서“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거제도설(巨濟島說)과 일본(日本) 요시다(吉田

東伍)의 동래설(東萊說)이 그것인데 나는 동래설을 취한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중환(丁仲煥)박사는「독로국고(瀆盧國考)」(d백산학보(白山學報)e8, 1970)

에서 수영천(水營川)을 통한 해상교통이 편리한 점, 동래(東萊)라는 지명이 독로(瀆盧)

에서 나온 미칭이라는 점, 주변에 동래패총(東萊貝塚), 복천동 고분군(福泉洞古墳群),

연산동 고분군(蓮山洞古墳群) 등 유적이 많이 분포한 점, 동래패총에서 야철지가 발견

된 점, 동래관할인 서면(西面), 다대포(多大浦) 등이 연안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던 점을

들어 동래에 비정하였다. 이같은 견해는 김정학(金廷鶴)선생의d임나와 일본(任那と日

本)e(小學館, 1977), 천관우(千寬宇)선생의d가야사연구(伽耶史硏究)e(일조각, 1991)에

서도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상과 같이 기존 연구에서는 근거의 제시와 논리의 전개에서 타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후 거제지역의 자료가 발굴·정리됨에 따라 근거자료의 보충과 함께 기존

견해의 재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먼저, 동래 비정설부터 재검토해 보기

로 한다. 현전하는 지리지(地理志) 등과 같은 문헌기록에서는 동래의 옛 지명이 확인된

다.d 삼국사기(三國史記)e권 34, 지리(地理), 동래군(東萊郡)에서는 그 이전부터 거칠

산군(居柒山郡)이라 명명한 군명(郡名)을 신라 경덕왕이 동래군(東萊郡)으로 바꾸었고,

d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e권 23, 경상도(慶尙道) 동래현(東萊縣), 건치연

혁(建置沿革) 및 군명(郡名)에서는 신라가 예전에 장산국( °山國) 또는 내산국(萊山國)

이라 일컫는 소국을 정복하여 거칠산군(居柒山郡)을 설치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d삼국사기(三國史記)e권 44, 거도전(居道傳)에서는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

간(干)의 벼슬을 역임한 거도가 우시산국(于尸山國)과 함께 거칠산국(居柒山國)을 정복

하였다고 한다. 한편d삼국사기(三國史記)e권34, 지리(地理), 동래군(東萊郡)에는 경덕

왕이 두 영현(領縣)인 본래의 대증현(大甑縣)을 동평현(東平縣)으로, 본래의 갑화량곡현

(甲火良谷縣)을 기장현(機張縣)으로 각각 개명한 사실도 밝혀 두고 있다.

이처럼 동래군은 신라 경덕왕 이전까지 장산국( °山國) 혹은 내산국(萊山國), 거칠산

국(居柒山國), 거칠산군(居柒山郡)으로, 그 두 영현(領縣)은 대증현(大甑縣) 및 갑화량

곡현(甲火良谷縣)으로 각각 명명되어 왔으며, 두로(瀆盧)와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동래(東萊)의 어원(語源)이 두로(瀆盧)와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동래라는 지명은 낙동강 동쪽에 있는 내산국(萊

山國)과 연결 개연성이 있으며, 또는 우리나라의 지명에는 중국과 같은 지명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중국의 봉래(逢萊)의 미칭과도 관련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

하여, 신라 경덕왕이 군현명을 개칭하면서 영속관계에 있었던 하위의 소속 군현명은 그

상위 주군현을 중심지역으로 삼은 방위내지 위치를 반영하였을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덕왕이 동래군의 영현(領縣)인 대증현(大甑縣)을 동평현(東平縣)이라 개

명하면서‘동(東)’자의 머리글자를 표기한 것은 동평현의 방향 내지위치가 관할 주군인

동래군의 동쪽에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동래군(東萊郡)의‘동(東)’자도 경덕왕 때 설치

된 김해(金海) 소경(小京)이나 낙동강의 동쪽에 위치한 내산국(萊山國)의 의미로 명명되

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특히 경덕왕 때 개명된 양주(良州) 관하의 군현명 가운데‘동(東)’자를 머리글자에 표

기한 사례는 동래군과 동평현 외 동안군(東安郡, 현 西生面), 동진현(東津縣, 현 江東

面), 동기현(東機縣, 현 內東面) 등에도 나타나는데 이들 지역은 모두 김해 소경이나 낙

동강 동쪽에 위치하며, 경주주변의 남기정(南畿亭), 중기정(中畿亭), 서기정(西畿亭),

북기정(北畿亭) 등도 모두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내지 위치를 고려하여 지칭된 지

명이다. 따라서‘동래(東萊)’의 연원은 단순히‘두로(瀆盧)’에서 찾기보다, 오히려‘동

(東)’이라는 방향내지 위치의 의미에서 이해함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이에 비하여 황령산(荒嶺山)이나 칠산동(柒山洞)이라는 산명(山名)과 지명은 모두 거

칠산국에서 유래하였음이 분명하다. 특히 당시‘두(瀆)’를‘독’이 아닌‘도’나‘두’로

발음되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은 발음은 앞의d고가연구(古歌硏究)e

에서 양주동박사도 이미 지적하였으며, 최근 국어사의 연구 성과에서도 상고음(上古音)

에‘ㄱ, ㄷ, ㅂ’의 받침이 없었다고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오늘날‘이두(吏讀)’를

‘이독’이 아니라‘이두’라고 발음하는 사례는 원상고음(原上古音)의 발음을 이해하는 지

표가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현존하는 문헌상의 기록이나 언어학적 연구 결과에서는 동래(東萊)의 지

명을‘두로(瀆盧)’와 연결시킬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를 찾기 어렵다. 다만 동래나 김해

지역이 전통적으로 해상교통의 요지라는 점과 동래지역에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3세기 이전의 유적이 적고, 거칠산국이라 해서 유

적이 없어야 한다는 논리는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유적이 많은 것은 도리어 당연한 일이

라고 생각된다. 다음으로는 거제 비정설을 살펴본다.

d삼국사기(三國史記)e권 34, 지리지(地理志), 거제군(巨濟郡)과d고려사(高麗史)e권

57, 지리지(地理志), 진주목, 거제현 및d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e권 32,

경상도, 거제현, 건치연혁 등에는 신라 문무왕(文武王)이 처음으로 상군(裳郡)을 설치하

였고, 경덕왕(景德王)이 거제군(巨濟郡)으로 개명하였으며, 바다 가운데의 섬이라는 사

실과 함께 세 개의 영현(領縣)인 아주현(鵝州縣, 본래 巨老縣), 명진현(溟珍縣, 본래 買

珍伊縣), 남수현(南垂縣, 본래 松邊縣)의 연혁도 기술하고 있다.

아울러 최근 보수도중에 발견된 거제군(巨濟郡)의 동헌(東軒) 건물인 기성관(岐城館)

객사(客舍)의 상량문(上樑文)에서는“집의 모양새가 크고 밝은데 대개 북쪽 궐에서 시작

되었다. 두로의 옛 도읍이 되었다…[宇制宏明盖權輿於北闕瀆盧故都…]”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상량문은 광서(光緖) 18년(1892) 임진(壬辰) 9월에 썼다고 한다. 또

한 함께 나온 또 다른 기성관의 상량문에는“상고(上古)의 두로(豆盧)가 건국(建國)…

[上古之豆盧建國…]”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들 세 자료는 두로국의 거제지역 비정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된다. 하나는 문무왕이

처음 설치한 상군(裳郡)의‘상(裳)’자의 유래 어원이며, 다른 하나는 늦은 시기에 해당

하지만 기성관의 상량문에 표기된‘두로(瀆盧)의 옛 도읍[瀆盧古都]’및‘두로(豆盧)가

건국[豆盧建國]’이라는 부분의 내용이다. 현재 한한자전(漢韓字典)에는 모두‘상(裳)’을

‘치마’의 의미로 해석하여 우리말 치마에서 유래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정다산은 치마를 두루지(두루기, 斗婁枝)의 방언이라 하였다. 현재에도 옷 위에 걸쳐

입는 두루마기나 비올 때에 입는 두롱이(도룡이)라는 용어는 모두‘두루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양주동선생은‘두루, 두리’가‘도로, 도리’로 와전(訛傳)되는 것처럼 주

(周)는 회(回)와 같이‘돌’로도 훈(訓)이 된다고 하고, ‘두리, 도리’는 또‘상(裳), 회

(回)’자로도 기록되므로,‘상(裳)’의 고훈(古訓)을‘두리, 도리’라 하였다.

즉,“ 상산은 무주에 있다. 네 면에 절벽이 솟아 있으며, 사람들의 치마와 같이 층층이

높이 쌓여져 있다. 그러므로 상산(裳山)이라 일컫는다[裳山在茂朱四面壁立層層峻載

如人之裳故稱裳山]”라는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여 상산(裳山)의 지명은 네 절벽으로 둘

러 쌓인 첩첩산이라는 뜻에서 나왔다고 파악하고,‘상(裳)’자는 원래 두루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변진(弁辰)의 두로(瀆盧)는‘두루, 도로’로 읽으며, 그 원래의

뜻은 주회(周回)이고, 두루는 곧 상(裳)과 그 의미가 통한다고 하였다.

또한 정다산이 언급한 두루기의 방언도 마찬가지로‘두루다’에서 연원이 되었다는 견

해를 제시하였다. 요약하면 상(裳)은‘두루, 도로’등 주회(周回)한다는 의미이고, 두로

(瀆盧)도‘두루, 도로’라 읽으므로 그 훈(訓)이 곧 상(裳)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으로 검토할 문제는 두(瀆)를‘두’로 발음이 가능한

가이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상고음에는‘ㄱ, ㄷ, ㅂ’과 같은 받침이 없었다는 견해가 국

문학사 전문가에서 일반화되어 있음으로 고대에는 두(瀆)를‘독’이 아니라 당연히‘두,

도’로 발음하였음이 분명하다. 또한d운회(韻會)e나d집운(集韻)e에서도 독을 두로도 발

음한다고 적시하고 있으며, 기성문의 상량문에서도‘두로(豆盧)’라 하여‘두(豆)’로 명

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무왕이 처음으로 설치한 상군(裳郡)의 명칭은 두로국을 신라

의 군현제에 편제시키면서 한역(漢譯)으로 표기한 사례임이 분명하다. 특히‘두루다’의

의미를 가진‘두로(瀆盧)’는 거제지역의 지형적 조건, 곧 사방이 산으로 둘러지거나 바

다로 둘러진 섬이라는 뜻과 연결된다. 이와 같이 새로운 자료의 발견과 국문학사적 연

구성과 및 거제의 지형적 조건을 통하여 거제지역에는 삼한시대의 두로국(瀆盧國)이 존

재하였음을 판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거제지역의 지리적 조건이 왜(倭)와 밀접하다

는 사실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동래지역에 비하여 거제지역이 지리적으로 왜

(倭)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으며, d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e권 32, 경

상도(慶尙道) 거제현(巨濟縣), 관방(關防)에“지세포영(知世浦營)은… 본국(本國, 朝鮮)

사람이 일본(日本)으로 가는 사람은 반드시 여기에서 바람을 기다리다가 바다를 통하여

대마주(對馬州)로 향한다”라고 하여, 거제지역이 대일(對日) 해상교통의 중심지임을 밝

히고 있다.

이처럼 거제 비정설은 여러 사실을 통해 그 객관적인 신뢰를 얻어가고 있다. 그럼에

도 여전히 해결되어야할 문제도 없지 않다. 두로국(瀆盧國)의 중심지를 뒷받침 할 수 있

는 객관적인 유물·유적의 미발견이 그것이며, 이 문제는 앞으로의 계속적인 발굴과 연

구가 축적됨으로써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과제로 남겨 두었다.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에 따르면 두로국(瀆盧國)의 위치비정과 관련한 논지와 근거는

동래설에 비하여 거제 존재설이 보다 객관적 설득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97

년 거림리(巨林里) 유적조사에서 보고된‘상사리(裳四里)’라는 명문(銘文) 기와편이 상

군(裳郡)과 밀접하며, 상군이전의 명칭인 두로국의 위치비정에 핵심적인 자료로 주목됨

에 따라 그 견해는 더욱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거제지역에서의 변한 두로국(瀆盧國)의 존재는 곧 삼한시대 소국(小國)을 형성한 상

당 규모의 독립적인 정치세력이 성장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들 정치세력의 실체를

설명하는 직접적인 문헌자료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삼한사회의 역사적 사실

과 단편적인 변한 기사, 거제지역의 지리·생산적 조건을 연결하여 이해함으로써 그 상

당부분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2세기경 이후 위만조선의 방해로 한(漢)과의 교역이 저지되고, 토착사회에 대

한 한(漢)의 분리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남방에 위치한 진국(辰國)은 정치적 발전을 제약

받고 있었다. 그후 선진문화를 가진 북방 유이민집단이 도래하여 철기문화를 보급하면

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등 삼한사회(三韓社會)는 발전이 가속화되어 갔

다. 한(韓)은 한한(汗翰), 간(干), 한기(旱岐), 간기(干岐), 검감 등으로 표기되며,‘ 대

인(大人)’,‘ 군장(君長), 대(大)’를 의미한다. 삼한은 신지(臣智), 읍차(邑借) 등의 장수

(長帥)가 다스리는 70여 개의 소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들 소국은 많게는 1만여 가(家)에서 적게는 6∼7백 가(家)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각의 소국은 독립적인 정치세력인 장수가 다스리고 있었다. 청동기를 소유하고 지석묘

(支石墓)를 축조할 수 있었던 세력은 각 지역의 지배자로 대두하였으며, 독자적인 정치

조직체계를 가지고 대외교섭을 전개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진왕(辰王)과 같이 점차 유

력한 정치세력이 그 중심으로 부각되어 갔다. 진왕은 마한 목지국(目支國)의 신지(臣智)

가 왕으로 받들어져 대대로 계승한 우세한 정치세력이었으나 연맹장(聯盟長)의 위치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었다.

목지국 이외 마한의 백제국(百濟國), 진한의 사로국(斯盧國), 변한의 구야국(狗邪國)

등도 중심세력으로 대두하고 있었으며 이처럼 삼한은 중심세력에 의한 연맹체(聯盟體)를

의미하였다. 한강유역에 위치한 백제국과 경주평야에 자리잡은 사로국은 각각 백제(百

濟)와 신라(新羅)로 발전을 하였으나 구야국은 끝내 가야연맹체 단계에 머물러 고대국가

로의 발전이 저지되었다.

한편 삼한사회는 철기문화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특히 비옥

한 낙동강유역의 평야에는 일찍부터 농경생활이 정착되었고 다른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으며 수전개간(水田開墾)과 수도작법(水稻作法)은 다른 지

역보다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짐작된다. 김해(金海) 등과 같은 고분유적에서 출토

된 쌀알[米粒]은 서기 1세기경으로 파악되나 이 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도작(稻作)이

이루어졌음을 엿볼 수 있다.

d삼국유사(三國遺事)e권 2, 가락국기(駕洛國記)에 표기된‘경전이식(耕田而食)’의

내용은 이같은 점을 시사하는 것이며 또한,d 삼국지(三國志)e한전(韓傳)에는“그 민들

은 토착하여 곡식을 심으며, 잠상(蠶桑)을 면포(綿布)로 짜는 것을 안다.”라고 하였고,

같은 책의 진한전(辰韓傳)에는“토지가 비옥하여 마땅히 오곡(五穀)을 농사지음과 함께

도작(稻作)을 하며, 잠상(蠶桑)을 면포(綿布)로 짜는 것에 밝다.”라고 하였는데 이 내

용은 삼한사회가 비교적 일찍부터 농경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낙동강유역에서는 오곡(五穀)과 도작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고, 포(布)를 짜기

도 하였다. 그 잉여생산물은 조공의 형식으로 중국까지 수출하고 그 대가로 관직미칭

(官職美稱)과 공예품 등을 받아들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무역의 형태로 일본에도 수출

하였거나 대마도(對馬島) 및 일본 왜구(倭寇)의 약탈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삼한사회에는 철제 농기구(鐵製農器具)와 그 제작 기술력이 알려졌고 개간사업, 수리

(水利)·제방(堤防)시설이 확충되었으며, 이와 함께 농경기술력의 발전도 확대되어 갔

다. 또한 삼한의 연안지역 사회에서는 해산물의 생산, 조선기술과 항해, 주변 나라들과

의 해상교역 등과 같은 해양경제도 크게 발전하였다. 이러한 농업 및 해상경제의 발전

은 인구의 증가와 함께 부의 축적을 크게 증대시켰으며, 이에 비례하여 각 지역 사회의

지배세력들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더불어 정치·군사적 위치를 강화시켜 나갔다.

특히 철제 무기류의 발달은 소국 내에서 지배세력의 군사·정치적 지위를 강화시키

고, 소국간의 대등한 협조관계를 종속관계로 재편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세력이 강한 소국은 주변의 약한 소국을 완전히 흡수하여 직접 지배할정도의 힘을 갖지

못해 연맹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 소국들은 철기의 보급과 인구증

가, 생산력 증대 등 사회·경제적인 성장을 토대로 대내적 지배권력을 강화하면서 대외

적 팽창을 시도함에 따라 소국간의 세력 격차가 심화되었고, 이전까지 유지되었던 대등

한 견제관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종속 질서로의 재편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편d삼국지(三國志)e변진한전(弁辰韓傳)에는 변한과 진한 24국의 국명을 함께 열

거함과 아울러“변한(弁韓)과 진한(辰韓)은 섞여 살고 있다.”라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당시 진한과 변한 사람은 서로 섞여 살았음이 분명하다. 기원전

1세기경에 출현한 변한은 낙동강의 연변을 따라 나누어 살고 있었으며, 가야연맹체의

경계와 상당부분 일치하는 경상도 일원에 위치하였다. 변한은 토지가 비옥하여 5곡(穀)

과 도작(稻作)이 이루어지는 등 농업 생산력이 유리하였다.

뿐만 아니라d삼국지(三國志)e변진한전에는“변한의 두로국(瀆盧國)은 왜(倭)로부터

경계를 연접한다.”고 하여 변한의 두로국이 남쪽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대마도 및 일

본과 연접한 남해연안에 위치하여 한일 해상교통의 중심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두로국을 포함한 변한 12소국은 다수의 읍락(邑落)으로 구성된 국(國)이였으며,

읍락은 개별 취락이 보다 큰 단위로 결합되어 있었고, 국읍(國邑)은 우열 차이가 생긴

읍락가운데 중심 읍락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각각 작은 별읍(別邑)에는 군장(君長) 내지 거수(渠帥)라는 정치세력이 존재

하였으며, 그 세력규모의 차이에 따라 신지(臣智), 험측(險側, 旱岐·감치·君長의 뜻),

번예(樊穢), 불네-弗(火), 한치(旱峙)보다 작은 부족장(部族長), 살해(殺奚), 읍차(邑

借)와 같이 지칭되고 있었다. 그 규모는 큰 경우 4∼5천 가(家), 작은 경우 6∼7백 가

(家)가 되었고, 독자적인 정치 세력권을 형성하였으며, 마한(馬韓), 예(濊), 일본[倭],

그리고 낙랑 및 대방과 같은 중국 군현과도 교류하고 있었다.

이와같이 변한을 포함한 삼한사회에 나타나 있는 일반적 사실은 거제시에 위치한 두

로국의 실체를 그려볼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삼한시대 두로국도 국읍, 읍락, 개별 읍

락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지역적 공간은 초기에는 상호 의존적 관계를 유지하였으

나 결국 상호 주종적 관계가 성립되었다. 두로국의 치소로서의 국읍은 청동기시대 유적

이 많이 나타나는 둔덕면과 연초면 일대를 유력한 후보지로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청동기시대 지석묘의 축조가 확인되는 아주동과 함께 명진과 송변에도 유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데 이는 삼한시대에도 이 지역에 유력한

정치세력이 존재하였을 것이므로 두로국의 별읍이 위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두로국의 국읍과 별읍에는 그 세력의 크기에 따른 독립적인 정치세력이 존재하였을 것

이다. 이들 유력한 정치세력은 성곽과 궁실(宮室) 및 관료조직을 갖추고 하호(下戶)라는

하층민을 통제하고 있었다. 군장은 하호로부터 노동력과 생산물을 공납(貢納)받고, 이

들을 전쟁의 군사력으로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지배적 위치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을 것

이다. 또한 이들 지배세력은 현재 경상도지역에 위치한 남해 연안지역의 해양경제도 장

악함으로써 부의 축적을 보다 확대시켜 나갔을 것이다. 특히d삼국지(三國志)e변진한전

에는“변한의 두로국(瀆盧國)은 왜(倭)로부터 경계를 연접한다.”고 한 사실, 그리고 고

대의 항해기술이 일반적으로 연안 항해법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

듯이, 두로국은 남해연안 지역사회에 있어서 해상교통로의 핵심적 위치라는 지리적 조

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독자적 발전을 전개해 나갔을 것이다.

이로써 이들은 독자적인 대외교섭을 전개하였으며, 나아가 변한사회의 대외교역과 문

화교류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두로국의 군장세력은 독자적으로 마

한, 예, 대마도나 일본, 중국 군현과 대외교섭을 전개하였을 것이며, 또한 진한·변한에

속하였던 여타 소국들의 대외교섭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였을 것이다. 특히 이들은

변한의 철 수출을 주도하는 해양교통의 전진기지로 역할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대외 교역과 교섭과정에서 두로국의 군장세력은 막대한 부를 축적함과 동시에 중국의

선진문화를 수입하여 그 문화를 배타적으로 독점함으로써 그들의 지배력을 강화시키고

또한 한반도의 선진문화를 일본으로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런 점은 변한사회의 발전과

정에서 두로국과 그 군장의 위상이나 역할을 가름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다.

두로국의 하층민인 하호들은 작은 규모의 읍락을 형성하여 계곡이나 해변가에 거주하

였으며 농업 및 해산물 생산에 종사하고 노동력 및 군사력을 제공함으로써 두로국을 유

지하는 사회·경제적 토대로 역할하고 있었다. 이들 이외 전쟁포로, 기타 나포(拿捕) 등

으로 발생한 신래자(新來者)들도 소국이나 지배층에게 예속되어 생산에 종사하거나 노

동력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로국의 자연적·지역적 환경을 고려한다면 이들 하

층민들은 농업생산과 함께 수산물의 생산에도 적극 관여하였을 것이며, 성곽이나 궁실

의 축조, 그리고 농업 기반시설 축조와 같은 일반적인 노동력 이외, 선박 제작이나 해상

운송 및 항해와 관련한 노동력과 기술 등도 제공하였을 것이다.

한편 변한은 진한과 함께 섞여 살았음으로 그 문화와 풍속은 유사한 면이 많았다.

d삼국지(三國志)e권 30, 위서(魏書), 변진(弁辰)과d후한서(後漢書)e한전(韓傳)에는

「변한(弁韓)은 진한(辰韓)과 서로 섞여서 살았으며 또한 성곽(城郭)이 있다. 의복(衣服)과

거처(居處)가 진한(辰韓)과 더불어 같으며 언어와 법속(法俗)도 유사하다. 귀신(鬼神)의 제

사는 다르다. 한편 장사(葬事)에 있어 마한(馬韓)에서는 관(棺)만 쓰고 외곽(外廓)이 없고

소와 말을 순장(殉葬)하는 풍속이 있었으나 변한에서는 큰 새의 깃털을 주검[死體]과 함께

부장(副葬)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그 뜻은 죽은 사람의 영혼(靈魂)을 날아 올라가게[飛揚] 함

에 있었다 한다. 부엌은 모두 집 서쪽에 마련하였다.

 변한의 두로국(瀆盧國)은 왜(倭)로부터 경계를 연접하고 있으며 12국(國)은 모두 군장(君

長)이 있었다. 비교적 몸이 크고 의복(衣服)은 말쑥하게 하고 머리는 길고, 그리고 폭(幅)이

넓은 세포(細布)를 짤 줄 알았다. 법속(法俗)은 특히 엄격하고 준엄하였다.」

「변한(弁韓)과 진한(辰韓)은 서로 섞여서 살았다. 성곽과 의복은 모두 같으나 말[語]과 풍

속(風俗)은 다른 바가 있다. 몸은 장대하고 머리는 아름답고 의복은 깨끗하다. 그리고 형법

(刑法)은 엄준하였다. 왜(倭)와 가깝기때문에 문신(文身)한 자가 자못 많다.」

이라 하여 변한은 성곽(城郭), 의복(衣服), 거주하는 주택에 있어서 진한과 같으며, 말

과 법속은 서로 비슷하였다. 특히 변한사람들의 가옥은 한인(韓人)과 같이‘귀틀집’을

짓고 살았으며,d 삼국지(三國志)e변진한, 위략(魏略)의“그 나라에서 집을 지을 때 통

나무를 가로 쌓아 올려서 지으니 마치 감옥같다.”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마한(馬

韓)의 움집과는 달랐다. 변한은 귀신(鬼神)의 제사에서 진한과 다르다. 또한 변한의 장

례 습속은 마한(馬韓)과 차이가 있는데, 변한에서는 관(棺)과 외곽(外廓)을 함께 설치하

며, 큰 새의 깃털을 부장(副葬)하는 풍속이 그것이다.

새 깃털의 부장은 죽은 사람의 영혼(靈魂)을 날아 올라가게[飛揚]하는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아 이들 변한인들은 육신이 지하에 머물고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영·육

(靈肉) 분리의 관념체계를 가졌으며, 영혼이 머무는 사후 세계를 하늘인 천상계로 상정

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같은 관념체계는 새의 속성과 함께 변한사람들이 살았

던 낙동강변에 철새들이 찾아 들었다는 자연적 환경조건 그리고 그들이 북방으로부터 이

주해 왔음에 따른 회귀하려는 잠재적 의식을 가졌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변한사람들은 부엌을 모두 집 서쪽에 마련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

들의 원주지인 북방의 위만조선에서 동남으로 남하하여 내려온 발자취를 의미하며, 현

재까지‘남향서조(南向西§)’를 주택의 이상적인 형태로 삼는 풍속의 전통과 직결된다

고 하겠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광명(光明)을 그리워하고 신앙(信仰)하는 민속이 어둡고

해가 저무는 서쪽에 연기(煙氣)를 내는 부엌을 마련하고 광명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남방(南方, 아래 앞)으로 정하는 것과도 일정한 연관을 가질 것이다.

또한 변한사람들의 체격은 일반적으로 크고, 머리는 길고 아름다웠으며, 몸에 문신

(文身)한 사람이 많았다. 의복은 깨끗하였고, 폭 넓은 세포를 짤 만큼 우수한 직조기술

도 가지고 있었으며, 직조한 포(布)는 중국의 군현 등에 교역하기도 하였다. 특히 그 법

속(法俗)은 엄격하고 준엄하였음도 알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변한의 문화와 습속은 곧 거제에 위치한 두로국의 그 속성과 일반적으로 일치

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특히 두로국은 일본과 가장 연접해 있음으로 몸에 문

신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을 것이다. 아울러 섬이라는 지형적 조건을 가진 두로

국의 문화습속에는 해양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특성도 있을 것이다. 이들

두로국 사람들은 다른 변한사람들에 비하여 해양 수산물의 생산과 항해 능력에서 뛰어

났을 것이고, 수장(水葬)의 장례습속과 함께 해양 타계의 사후 세계관념도 가졌을 것이

며, 바다 신이나 항해에 필요한 성신(星辰)에 대한 제사관념도 지녔을 개연성이 많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상과 같이 거제지역에 위치한 변한의 두로국은 농업경제와 해양경제를 바탕으로 소

국을 형성하여 발전하였다. 군장 또는 거수라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은 성곽이나 궁실 등

을 축조하여 거주하면서 관료조직을 갖추고 하호(下戶) 등과 같은 하층민을 지배하였으

며, 해양경제와 대외교섭을 주도하면서 자신의 지배적 위치를 강화시켜 갔다. 이러한

두로국의 문화는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어 일본의 초기국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와 같이 거제지역의 농업 생산기반 이외 해양이라는 지리적·자연적 환경과 관련한

해양생산 기반은 두로국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적극적으로 작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두로국은 한국 고대해양사 및 해양문화의 전개와 직결하여 이해될 수 밖에 없

을 것이다.

이같은 두로국이 위치한 거제지역에는 3세기 초반내지 후반인 전기 가야시대까지도

남해연안의 정치세력과 동맹관계를 가지면서 유력한 정치집단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d삼국사기(三國史記)e권 2, 나해니사금(奈解尼師今) 14년과 권 48, 물계

자전(勿稽子傳) 및d삼국유사(三國遺事)e권 5, 물계자전(勿稽子傳)에 기록되어 있는 소

위 포상팔국(浦上八國)의 전쟁내용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나해니사금) 14년(209) 가을 7월에 포상팔국(浦上八國)이 가라(加羅)를 침략하려 모의

하니 가라의 왕자(王子)가 신라에 와서 도움을 요청하였다. 왕이 태자(太子) 우로(于老)와

이벌찬(伊伐飡) 이음(利音)에게 명령하여 6부(部)의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이를 구원하게 하

니 팔국(八國)의 장군(將軍)을 쳐서 죽이고 노략한 사람 6,000명을 빼앗아 돌려 주었다.」

「물계자(勿稽子)는 나해니사금(奈解尼師今) 때의 사람이다.…그 때 포상팔국(浦上八國)이

함께 모의하여 아라국(阿羅國)을 치니 아라(阿羅)의 사신이 와서 구원을 요청하였다. 니사금

(尼師今)이 왕손(王孫)인 내음( ? 音)에게 근군(近郡) 및 6부(部)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

원케 하였다. 마침내 팔국(八國)의 병사를 패퇴시켰다.…그 후 3년에 골포(骨浦), 칠포(柒

浦), 고사포(古史浦)의 세 나라 사람이 갈화성(竭火城)에 와서 공격하니 왕이 병사를 거느리

고 나가 구원하여 세 나라의 군사를 크게 패퇴시켰다.」

「제10대 나해왕(奈解王) 즉위 17년(212) 임진(壬辰)에 보라국(保羅國), 고자국(古自國: 지

금의 固城), 사물국(史勿國: 지금의 泗川) 등 팔국(八國)이 힘을 합하여 변경을 와서 침략

 하였다. 왕이 태자(太子)인 내음( ?音)과 장군 일벌(一伐) 등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이를 막게 하니 팔국이 와서 항복하였다.… 20년 을미(乙未)에 골포국(骨浦國: 지금의 合

浦) 등 세 나라의 왕이 각각 군사를 거느리고 갈화(竭火: 屈弗인 듯하니 지금의 蔚州)에 와

서 공격하였다. 왕이 군사를 친히 거느리고 이를 막으니 세 나라가 모두 패퇴하였다.」

위의 세 기록은 포상팔국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이나 전쟁 대상과 그 시기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기사와 관련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포상팔국의 전쟁 시기 및 그 대

상과 함께 포상팔국의 위치비정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우선 전쟁 시기는 3세기 초

반, 3세기 후반∼4세기 전반, 4세기 전반, 6세기 중엽, 7세기 초반 등과 같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6세기 이후의 입장은 최근에 비판적 검토가 이루어졌으며, 3세기 초반 및 후

반의 견해가 보다 합리적인 논리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기사의 내용은 이 시기로

상정하여 전개하기로 한다. 다음으로 전쟁 대상도 김해의 금관가야와 함안의 안라국으

로 달리 이해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최근에는 함안지역의 고고학적인 자료, 문헌기록

의 비교 검토, 포상팔국의 전쟁 성격 등을 고려함으로써 그 대상이 함안의 안라국이였

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며, 여기서도 이를 주목하기로 하였다.

끝으로 포상팔국의 위치비정은d삼국유사e이래 조선후기 실학자와 함께 해방 이후의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위치를 함안과 근접한 경남 남해 연안지역인 칠원, 창원, 웅천, 진동, 거제, 고성,

사천, 삼천포 등으로 비정하고 있는 입장이 제시되고 있으며, 여기서는 특히 고성과 거

제지역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같은 견해를 고려한다면 3세기 초반내지 후반까지 거제지역에는 포상팔국(浦上八

國)과 동맹세력을 유지하였던 유력한 정치세력의 하나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가야연맹의 유력 국가가운데 하나였던 안라국을 크게 위협하였으며, 신라

의 구원병에게 격퇴될 만큼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 거제지역의 유력

한 정치집단은 고성의 소가야 세력에 속하였을 것이나 동맹세력으로서의 유력한 군사력

과 정치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거제지역을 포함한 포상팔국의 안라국 침략은 대외교역의 재분배권을 둘러싼 전쟁이

며 또한 그 이전까지 중국 군현 등과의 교류를 통한 막대한 부의 축적과 선진문화의 수

용에 따른 그 단절의 위기극복과 함께 보다 발전된 사회조직의 구성에 대한 열망, 그 대

안으로서의 군사적 안전지대와 철산지(鐵産地) 및 농업기반의 확보 등에 유리한 내륙지

역의 진출 교두보를 구축함에 있었을 것이다. 즉 대외교섭의 변화에 따른 약화된 교역

분배권의 확보와 함께 사회조직의 내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내륙진출의 교두보를 구

축함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위의 기사에서 확인되듯이 포상팔국(浦上八

國)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으며, 이에 비하여 신라의 구원을 받은 안

라국은 해상진출의 직접적인 교통로를 확보하여 남해 연안지역의 해상 경제력과 대외

교섭통로를 장악함으로써 급속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과정

에서 4세기경 거제지역의 유력 정치세력은 아라가야(阿羅伽耶) 또는 아야(阿耶), 아

시량국(阿尸良國), 아나가야(阿那加耶), 아라(阿羅) 또는 아라국(阿羅國), 안사(安邪),

안라(安羅), 전라(前羅) 등으로 기록된 안라국(安羅國)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었다고 짐작

된다.

이러한 거제지역의 유력한 정치세력은 안라국이 신라에게 멸망하는 6세기 중엽에 신

라의 세력권으로 재편되어 갔을 것이다. 가야 멸망기인 6∼7세기 경에는 거제지역에 신

라의 석실묘가 일부 계층에서 유행하였는데 이같은 사실은 거제지역이 백제보다 신라와

의 정치·문화적 교류를 강력하게 희구하였으며, 신라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어 갔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편 삼국시대 거제지역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그 중심지는 유적의 분포를 통해서 짐

작할 수 있다. 거제지역에 있어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기에 이르는 유적은 고분군(古

墳群)이 대부분이며, 대략 10개소 정도 확인되었다.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적가운데

고분군은 하청면(河淸面)일대와 이목댐 주변의 참샘을 비롯하여 거제면(巨濟面), 아주

동(鵝洲洞) 등지에 분포하고 있으며, 생활유적은 거제면과 하청면일대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이로써 이 시기에는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거제지역 사람들이 분산되어 생활하였

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도 통일신라~고려시대 거제의 치소로 짐작되는 둔덕면

거림리 일대가 삼국시대 이 지역의 통치 중심지였을 것이다.

5. 통일신라시대:신라체제로의 편입과 독자적 활로 모색기

통일신라의 지방제도는 9주 5소경을 근간으로 하는 군현제를 시행하여 전국을 120개

의 군(郡), 305개의 현(縣)으로 편재하였으며, 군·현에는 중앙에서 외관(外官)을 파견

하였다. 이와 함께 통일신라 초기인 7세기 후반에는 거제지역도 신라의 지방 군현체제

에 완전히 편재되는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이하였다.d 삼국사기(三國史記)e권 34, 지리

지(地理志), 거제군(巨濟郡)에는

「거제군(巨濟郡)은 문무왕(文武王)이 처음으로 상군(裳郡)을 설치하였으며, 바다 가운데

섬이다.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렀으며, 영현(領縣)이 셋이다. 아주현

 (鵝州縣)은 본래 거로현(巨老縣)이며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고, 명진현(溟珍

縣)은 본래 매진이현(買珍伊縣)이며 경덕왕이 이름을 고치어 지금까지 이른다. 남수현(南垂

縣)은 원래 송변현(松邊縣)이며 경덕왕이 개명(改名)하였으나 지금은 다시 예전대로 바꾸었다.」

이라 하여 신라 문무왕 17년(677)에는 처음으로 상군(裳郡)을 설치하였고, 경덕왕 16년

(757년)에는 거제군(巨濟郡)으로 개명함과 동시에 아주현(鵝州縣: 현 장승포시 아주

동), 명진현(溟珍縣: 현 거제면 명진리), 남수현(南垂縣: 현 남부면 多大里)의 세 현을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이와 함께 지명도 한자식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사실은 거제지역의 유력한 세력이 그 독립적 위상을 상실하고, 신라 중앙정부

의 지방 통치구조에 편입되었으며, 결국에는 신라의 통치체제 내부로 완전히 종속되어

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시기 거제지역의 통치 및 행정 중심지인 치소(治所)는 둔덕

면 거림리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거림리 유적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유구의 배치상태와 성격, 동반유물의 특징과 함께 특히‘상사리(裳四里)’라는 명문(銘

文) 기와의 발견은 그 개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근자까지 삼한시대 두로국(瀆盧國)의 위치비정과 더불어 삼국~고려시대 거제지역의

치소는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명문 기와의 발견으로 최소한 고려

이전 거제군, 특히 상군(裳郡)의 치소가 구체화되고 있으며, 거림리가 그 위치로 주목받

고 있다. 특히‘상사리(裳四里)’라는 명문은 기와가 제작된 지명으로 당시의 기와제작과

운반거리를 고려한다면 상사리지역은 거림리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

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점은 곧 상군(裳郡) 주위에는 상일리(裳一里)부터 상사리(裳四里) 이상의 행정

지명이 분화되어 있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삼국~통일신라시대 상군(裳

郡), 즉 거제군의 치소는 명문기와가 발견된 거림리일대이며, 13세기 말까지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거제군과 세 영현(領縣)에도 다른 군현과 마찬가지로 치소인 읍사(邑

司)와 함께 그 하부의 말단행정 구역에는 행정촌과 자연촌이 편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여러 곳의 자연촌을 묶어 행정촌으로 편재하였으며, 행정촌에는 지역의 토착세력인 촌

주가 외관의 통제하에 촌락민을 자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촌에는 각각 군현민(郡縣民)인 농민층이 거주하였으며, 이들은 촌주를 통하여

국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일본 정창원 소장의「신라장적(新羅帳籍)」과 같은 사례에서

엿볼 수 있듯이 통일신라시대 거제지역의 촌주도 촌락거주의 농민에게 역(役)과 조세를

부과하는 공문서로 농민의 토지(土地), 호구(戶口), 우마(牛馬), 상마전(桑麻田) 등을

모두 계정하는 장적을 3년마다 조사·정리함으로써 자신의 농민 지배력을 확대시켜 나

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과정에서 촌주는 촌락민의 과실나무와 가축의 수까지도 자세

히 기록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촌주의 대민(對民) 자치 지배력은 나말여초 재향정치세

력으로 성장하는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통일신라시대 군현민의 간접통치 조직과 신앙적 안식처로 역할한 지방의 관립

사원(官立寺院)은 거제지역에도 설치·운영되었다고 짐작되며, 거제에도 주군(州郡)의

승강(僧綱)과 교화(敎化)를 담당하는 승계조직이 파견되었을 것이다. 현재까지 거제지

역에서 전설로 전하고 있는 북병산록(北屛山麓)의 은적사(隱寂寺)나 취산(鶯山)의 정수

사(靜水寺) 등이 지방 관립사원으로 짐작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사원은 통일신라시대

거제지역에 있어서 불법(佛法)연구와 신앙(信仰)보급의 핵심적 공간으로써, 지역민에

대해 정치·사회적 지배이념과 일상의례나 생활신앙을 제공하고, 군사·교통의 근거지

등의 기능을 하였을 것이다. 이에 통일신라기 전기간동안 거제지역에 살았던 모든 계층

은 신앙의 성소(聖所)로 각인하여, 인적·물적 지원(보시)을 적극적으로 하였으며, 그

결과 거제지역의 교(敎)·속(俗)이 교류하는 공간으로 위상을 굳혔을 것이다.

물론 신라 말 불교의 세속화 과정에서는 세속인과 충돌하는 현상도 있었을 것이나 이

들 사원이 가진 거제지역 내부에서의 순기능이나 긍정적 역할을 통해 지역민과 우호적

협조관계를 유지하였던 객관적 사실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사원은 통일신라시

대 거제지역민들을 결집시키는 현실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d삼국사기(三國史記)e권 10, 소성왕(昭聖王) 원년(799)에는 청주(菁州: 현 진

주)의 거로현(居老縣), 즉 거제군의 아주현(鵝州縣)을 국학생(國學生)의 녹읍(祿邑;食

邑)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아주현지역의 농업 생산력 기반이 상당하였으

며, 그 결과 신라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지배가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7세

기 중엽 경덕왕이 거로현을 아주현으로 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7세기 말인 소성왕 원

년까지 이전의 군현명인 거로현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

다. 그 연유는 여러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겠으나 이 기사를 그대로 인정한다면 소성왕

원년 국학생 녹읍이 설치될 때까지 거로현에 중앙정부의 군현 통치체계가 철저하게 미

치지 못한 결과와도 일정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는 소성왕이 이 지역에 대한 직적접인 통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국학생 식읍을 설

치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을 인정한다면 거제지역은 신라 중앙정부

의 통제력을 벗어나 그들 자신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거제지역이 가지는 해양문화의 특징과 함께 풍부한 해상 경제력

및 농업 생산력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분적으로는 진골 귀족, 지역적 공간으로는 경주(慶州)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골품

(骨品)체제를 유지하였던 통일신라시대, 그 외곽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던 거제지역과 그

재향 토착세력은 경주인(慶州人)에 비하여 일정한 소외를 받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럼에도 이 시기는 우리나라의 동남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대중(對中)·대일(對日) 교섭

이 전개되었음으로 경주와 그 주변지역에 대한 해상교통의 거점에 있었던 거제지역은

그 역할과 위상에서 일정한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라 골품제의 동요, 토지지배의 문란, 전면적인 농민항쟁 등에 따라 신라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된 나말여초의 사회변동기에는 각 지역에서 재향 지배세력이 성장하

여 독자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그 지역에 대한 행정적·경제적 지배권을 배타적으로

행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유력자층은 해상 경제력도 장악해 갔는데 경

남 남해연안 지역사회에서도 이 곳에 산재한 수산물의 생산 관리권과 대중국·일본 무

역권을 독점하여 부를 축적한 지방세력이 등장·성장하고 있었다. 금주(金州: 현 김해)

지역의 김인광(金仁匡)과 소율희(蘇律熙, 또는 金律熙)·충자(忠子) 형제, 청주(菁州:

현 진주)지역의 왕봉규(王逢規) 등이 그 대표적인 세력이다.

이같은 역사적 조건을 염두에 둔다면 나말여초 거제지역에서도 재향 지배세력이 등장

하여 성장하였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은 나말여초∼조선시대 거제지역의 재

지 토착세력으로d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e와d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e

권 150, 경상도(慶尙道), 진주목(晋州牧), 거제현(巨濟縣), 토성(土姓)에 기록된 정

(鄭)·반(潘)·박(朴)·윤(尹)·조(曺)·손(孫) 등의 여섯 토성 이족(土姓吏族) 집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거제지역이 남해연안 지역사회의 해상교통 중심지로 역할하였다는 사실을 고려

한다면 이들은 김해지역이나 진주지역의 토착 해상세력과 연대세력을 도모하거나 독자

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활로를 모색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경남 남해연안의 수산물 생산

과 대중국·일본 무역에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을 것이며,

거제지역의 농업 경제력도 장악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나말여초 거제지역의 토착세력은

그 지역의 해상경제와 농업 경제력을 장악하여 신라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주변의 유

력한 재향 지배세력과 연대세력을 구축하는 반독립적 세력이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

여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다.